시각과 관련된 논리를 전개할 때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우리는 무작위로 퍼져 있는 점을 바라보는 경우보다 그것의 집합체인 사람이나 물건을 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다시 말해서, 눈을 통해 접수된 정보가 두뇌에서 해석되어 '시각'이라는 감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구체적인 과정은 아직 알려져 있지 않다. 아마 앞으로도 한동안은 밝히기 어려울 것이다. 두뇌의 작용을 두뇌로 이해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같은 사람을 몇 차례 만나고 나면 그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마주쳐도 금방 알아볼 수 있다. 시각이란 단순한 정보 수집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정보를 조합하는 기능도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적인 영상이 해석되는 과정을 이해하려면, 우선 망막을 이루는 각 세포들이 정보 입수의 초기 단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제기되고 있는 색상 인지에 관한 이론들은 원추 세포에 세 가지 종류의 색소가 있다는 것과, 이들의 흡수 스펙트럼이 색상을 좌우한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세 개의 색소들이 수집한 정보가 한데 어우러져서 종합적으로 얻어지는 결과는, 각 색소가 수집한 정보의 단순한 합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우리는 노란색을 보면서 '붉은색이 가미된 초록색'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저 노란색일 뿐이다. 그러므로 모든 색들이 기본색의 혼합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런 주장을 펼치면 매우 황당해 할 것이다. 우리의 눈이 색을 느끼는 과정은 귀가 소리를 느끼는 과정과 사뭇 다르다. 우리의 귀는 세 개의 음(도미솔)이 한꺼번에 들려와도 그것을 낱개로 분리할 수 있지만, 세 가지 색이 혼합되어 잇는 경우에 우리의 눈은 그것을 낱개의 색으로 쉽게 분리하지 못한다.
시각의 원리를 연구하던 초기의 학자들은 원추 세포도 세 종류로 구분하였다. 즉 하나의 원추 세포에는 하나의 색소가 대응되며, 이렇게 수집된 세개의 정보가 개별적으로 두뇌에 전달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완전한 이론이 될 수 없다. 시각 정보가 시신경을 타고 두뇌에 전달되는 것이 사실이라 해도, 우리는 그 과정에 대하여 아는 바가 전혀 없기 때문에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좀 더 근본적인 문제를 파고 들어가야 한다. 여러 개의 정보들은 과연 어느 지점에서 하나로 합쳐지는가? 눈으로 들어온 정보는 시신경을 통해 그대로 두뇌에 전해지는가? 아니면 망막에서 한차례 분석을 끝내고 난 후에 두뇌로 전달되는가? 망막은 엄청나게 복잡한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다. 이렇게 복잡한 구조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무런 사전 분석 없이 정보를 그대로 두뇌에 떠넘긴다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해부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망막을 하나의 두뇌로 간주하고 있다. 실제로, 태아의 뇌가 생성될 때 그중 일부는 기다란 섬유 형태로 자라나서 눈과 연결된다. 그래서 망막은 두뇌와 아주 비슷한 구조를 갖고 있다. 어떤 학자는 "두뇌가 바깥을 보는 방법을 개발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서, 빛을 받아들이는 '두뇌의 첨병'이 바로 눈이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망막이 색을 분석한다는 표현이 그다지 틀린 말 같지는 않다.
다른 감각 기관들은 눈만큼 복잡한 계산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 소리와 냄새, 피부 자극 등은 곧바로 두뇌에 전달되는데, 정확하게 두뇌의 어느 곳에서 정보가 분석되는지는 분명치 않다. 그러나 눈의 경우에는 세 개의 층을 이루는 세포들이 복잡한 계산을 수행하여 색을 분석한 후, 그 결과가 시신경을 통해 두뇌로 전달된다. 망막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생리학적 과정들은 외부의 자극에 두뇌가 반응을 보이는 첫 단계인 셈이다. 그러므로 색상을 지각하는 문제는 시각의 원리뿐만 아니라 생리학적인 측면에서도 매우 흥미로운 연구 과제이다.
우리의 눈이 각기 다른 색에 순응되었을 때, 눈에 보이는 색상들은 어떻게 달라지는가? 이 문제는 심리학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를 들어, 하얀색이 붉은색이나 초록색, 또는 푸른색으로 느껴지지 않는 것은 일종의 심리학적 현상이다. 심리학자들은 우리의 눈에 보이는 순수색을 네 가지로 분류하고 있다. "푸른색과 노란색, 초록색, 그리고 빨간색은 매우 강한 심리적 반응을 유발시킨다. 적갈색이다 마젠타, 자주색 등과는 달리 이 단순한 색들은 서로의 상대방의 색을 공유하지 앟는다. 푸른색은 노랗거나 붉거나 초록 기운을 띠고 있지 않다. 심리학적인 측면에서 볼 때 , 가장 기본을 이루는 색은 이 네가지로 압축될 수 있다." 이것은 이미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심리학 이론이다. 그들이 이런 주장을 펼치는 근거를 파악하려면 모든 관련 서적들을 샅샅이 뒤져야 한다. 최근에 발표된 관련 서적들을 보면 모두 똑같은 주장을 반복하고 있는데 이것은 레오나르도 다 반치가 모든 색을 다섯 가지로 분류했다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조금 더 오래된 책에는 이런 주장도 나온다. "자주색은 붉은 기운이 도는 푸른색이고 주황색은 붉은 기운이 도는 노란색이다. 그렇다면 빨간색을 자줏빛이 감도는 주황색으로 간주할 수 있을까? 빨간색과 노란색은 자주색이나 주황색보다 고유성이 떨어지는 색인가? 보통 사람들에게 고유한 색을 말해보라고 하면 흔히 붉은색과 노란색, 그리고 푸른색을 언급한다. 일부는 여기에 초록색을 추가하는 사람도 있다. 심리학자들은 눈에 띄는 네 가지 색을 기본색으로 간주하는 데 익숙해져 있다." 어떤 사람은 삼원색을 주장하고, 또 어떤사람은 사원색을 주장한다. 그래서 색에 관한 심리학적 연구는 항상 어려움에 직면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심리학보다 생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편이 유리할 것 같다. 두뇌와 눈, 망막에서 일어나는 과정을 추적하다보면 신경 섬유로 전달되는 다양한 신호의 조합으로부터 어떤 법칙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론적으로는 여러 가지 형태의 시각 인지 시스템이 가능하지만, 우리는 이들 중에서 자연이 어떤 것을 선택했는지 알아내야 한다. 시각의 생리학적 구조가 알려지면 심리학적 구조도 어느 정도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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